피동접사 래빗홀
발단
원래 래빗홀은 시험기간에 잘 파인다. 지금은 시험이 일주일도 안 남았고 나는 공부하기 귀찮아 피동접사 관련 논문을 보고 있다. 근데 어케 정리할지 모르겠다. 아마따 미친듯이 메모하기란 방법이 있었지!
아 잠만 이 소리가 뭔 맥락이냐고? 그니까, 예전1에도 함 쓴 적이 있는데 3월쯤 국어 시간에 피동 표현에 대해 배웠다. 국어 문법이 나의 최애 분야인만큼 난 그 부분을 당일날 쬐끔 예습했고, 피동접사 4개 (-이-, -히-, -리-, -기-)가 교과서에서 언급되는데 넷 중 어떤 게 어떤 규칙으로 적용되는지 저언혀 설명이 안 되어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교과서에 여러 능동사와 피동사를 적어가보며 피동접사의 규칙을 파악해보려 했다.2
그래서 피동접사 바로 전에 나오는 음소3에 따라 어떤 피동접사가 들어갈지 결정된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때 써놓은 것 그대로 가져오기 + 좀 더 (이탤릭체로) 써보자면:
- ‘-리-’는 ㄹ 뒤에서 나타난다.
- ‘-히-’는 예사소리 받침 뒤에서 나타난다. (불규칙: 믿다 → 믿기다, 긋다 → 그이다) '예사소리 (장애음) 받침'이라면 ㄱ, ㄷ, ㅂ, ㅅ, ㅈ일텐데 ㅅ과 ㅈ은 증거를 못 구했다. 왜 일케 일반화했니 한달전 나야.
- ‘-이-’는 된소리(ㄲ) 받침 뒤에서 나타난다. 또다시 ㅆ은 못찾았잖아. 왜 된소리라 적었니. 애초에 된소리 받침 되는게 ㄲ ㅆ밖에 없는데.
- 거센소리 받침 뒤에서도 발음상 나타나는 것 같다. 쓰는 건 모르겠다 그런 단어를 본 적 없다. (쫓다는 불규칙) ㅊ받침이 쓰인 단어를 쫓다밖에 못 찾아놓곤 이렇게 쓴 거다. '좇다'란 단어도 있는데 어케 쓰는지 모르겠다.
- ‘-이-’는 ㅗ, (?ㅏ, ㅓ) 뒤에서 나타난다 (예: 꼬다 → 꼬이다, 쏘다 → 쏘이다, 퍼다 → ?퍼이다, 차다 → 차이다, 사다 → ?사이다, 불규칙: 치다 → 치이다) ㅣ로 끝나면 피동접사가 못 붙는다
- 어근이 2음절 이상이고 ㅡ로 끝나면 ㅡ가 탈락된다. 그리고 피동접사는 ㅡ가 탈락되고 나서 붙는다. (예: 바르다 → 발리다)
한달전에 쓴 거지만 지금 보니 정말... 부족한 정보로 너무 일반화를 한 것 같고 반례도 많았는데 다 불규칙이라 치부한 게 너무 많았다. 근데 이 '부족한 정보' 부분이 나중에 좀 중요해지는 것 같다.
어쨌든 수업시간에 쌤한테 '피동접사 중 어떤 게 붙는지를 결정하는 규칙이 있냐'고 물어봤다. 쌤이 없다랬다. 내가 이때까지 추측한 규칙을 쌤한테 보여줬다. 쌤이 원래 언어는 규칙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신경 끄라캤다. 아니 어떤 쌤이 세상에 탐구를 하려는 학생에게 '신경을 끄라'카노?! 시험에 안 나올 거지만 너무한 거 아니가?4 근데 그 쌤이 원래 쬐끔 문법 설명이 이상하다. 심지어는 한국어의 모음조화까지 부정했다니까. (모음조화가 사라지는 건 맞는데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참고로 맥락은 피동사를 만들 때 -아지다/-어지다 중 뭐가 쓰이는지는 모음조화에 달려있냐고 내가 질문한 거다.) 어쨌든 그 소리를 듣고 난 '흠 선생님이 틀린 것 같아 그걸 난 증명할꼬야!!!'란 생각이 들었다. 근데 걍 논문같이 어떤 신비한 천재들이 만들었단 이유만으로 신빙성을 내뿜는 권위적인 무언가에 호소하기보단, 내가 직접 실험으로 증명하는게 훨씬 재밌고 남는게 많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간단한 실험을 하기로 했다.
전개
물론 내가 모를 뿐이지 언어학에서 자주 쓰일 것 같은 실험이지만, 내가 첨에 이 아이디어를 가진 건 갑자기 wug test가 생각나서이다. 그 애기들한테 'wug'란 단어를 알려주고 wug의 복수형이 들어갈 자리에 빈칸을 띄워놓으면, 애기들이 'wugs'란 단어를 성공적으로 써서 '애기들은 언어를 무작정 외우는 게 아니라 규칙을 알고 있구나'라고 결론내리는 그 실험 말이다. 그것처럼 새로운 동사를 만들고 피동접사를 이용해 피동형을 쓰도록 유도를 하는 거다.
왜 없는 동사를 새로 만드는가? 팩트는 이거다: 피동접사는 4종류 있고 한국어 화자들은 피동접사를 붙일 수 있는 동사면 매우 일관적으로 한 가지 종류의 접사만 붙인다. '안다'는 무조건 '안기다', '잡다'는 무조건 '잡히다'. '안히다', '잡기다'는 이상하다. 그럼 규칙이 있으면 그 규칙에 따라 일관적으로 피동사를 만든다고 할 수 있다. 근데 국어쌤 말대로 규칙이 없으면? 그건 우리가 능동사-피동사 쌍을 암기한다는 거다. (아님 아예 피동사는 능동사에서 파생된 별개의 단어 취급한다든지, 이것도 나중에 나온다) 그래서 만약 있는 동사로 실험을 한다면, 모든 사람이 같은 능동사에서 같은 피동사를 만들어낸다는 결과를 보고 '규칙이 있어서'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냥 외워버려서'라고 말할 수도 있는 거다. 근데 없는 단어를 만든다면? 규칙이 있음 적용되겠고 암기는 통하지 않겠지.
실험 결과가 제대로 안나온다
당일날 바로 간이 실험을 시작했다. '팜다'란 동사를 만들어 학생들이랑 쌤들한테 '팜다의 피동은 뭘까'라 물어보고 다녔다. 한 10~15명쯤 물어봤을려나. 결과는 이렇게 나왔다 (정확한 수치를 기록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 팜기다/팜겨지다 (가설대로): 약 2~3회
- '나 국어 못해': 나머지
???
좀 많이 잘못됐다. '팜히다' 등 예상과 다른 피동접사를 사용하거나 하는 건 없는 걸 보고, 그리고 '규칙은 존재한다'란 나의 맹신으로, '규칙은 존재하기 때문에 답하는 애들은 규칙에 맞는 대답을 하는 것이나, 답하지 못하는 애들이 많은 이유는 이게 언어직관이 아니라 국어 실력 테스트라 생각하는 거다'란 결론을 내렸다. 애초부터 '피동'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한테도 질문을 했는데, 어떻게 '팜다의 피동이 뭐냐'는 질문에 답하겠냐. (이 질문을 받은 국어쌤은 나한테 똑같은 걸 되물었다 ㅋㅋㅋ)
그래서 사람들의 직관을 끌어올리기 위해, 그리고 더 많은 단어를 테스트하기 위해 (그래도 단어 양이 너무 많아지면 애들이 참가할 시간이 없을 거다) 10개 정도 단어를 갖고 빈칸 채우기 실험지를 만들었다. 능동사를 사용한 문장을 주고, 같은 문장을 피동으로 다시 쓰고 피동사를 빈칸으로 뚫어놓았다. 이런식으로:
내가 고양이를 팜았다 <-> 고양이가 나에게 _______
근데 실험지를 컴퓨터로 만들었고 인쇄하기 귀찮아서 결국 테스트를 못했다. 다만 딱 한명의 응답을 받았는데 응답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 그니까 예상 밖이었다구.
일단, 피동접사를 안 쓰고 -아지다/-어지다만 쓰는 게 대부분이었다. 내가 그 친구한테 왜 안 썼냐고 물어봤는데 '걍 떠올려지지5가 않았다'라고 했다. 그리고 심지어 '함다 -> 함아였다'가 되는 피동사 생성 방법은 듣도보도 못했다. ('함아졌다' 오타인가? 모르겠다)
그 뒤론 피동접사 실험을 별로 안 하고 다녔다. 가끔씩 멘션이 나올 때마다 물어보긴 했다. 근데 그 이후로 물어본 애들은, '모른다'뿐만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피동접사를 사용하지 뭐야. 팜다 -> 팜히다 식으로. (실제로 '팜이다, 팜히다, 팜기다, 팜리다 중 팜히다가 젤 자연스럽다'라 말했다)
그래서 어제까지 조사한 결과. 한 20~30명 정도 조사한 것 같고 '함다/팜다'란 단어를 사용해서 물어봤다. 가설대로 '함기다/팜기다' (혹은 이중피동으로 '함겨지다/팜겨지다')라 말한 애들이 3~4명이었고, 다른 피동접사를 사용한 애들이 3명? 이었고, 나머지는 모른다 혹은 피동접사 외 다른 방법으로 피동사를 만들었다. 심지어 가설대로 대답한 애들도 몇 초 생각하고 대답했다. 물론 '23 더하기 35는 뭐냐' 하면 몇 초 대답하는 게 빠르겠지만 만약 피동접사가 한국어 화자의 직관에 박힌 규칙이라면 '[동사]의 과거형이 뭐냐'만큼 빠르게 나와야 하는 게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위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국어 개념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국어 문법 관련해선 교과서만으로 만족 못하는 사람이고, 꼭 궁금증을 다 해소하고 공부해야 한다. 특히나 문법을 학교에서 공부할 때 가장 호기심이 넘치므로 이 시기를 넘긴다면 호기심이 식지 않을까, 란 생각 때문에. 그래서 피동접사 관련해서 나무위키, 논문을 찾아본다.
나무위키의 '피사동 접사' 문서엔 이런 말이 나온다:
- -이-: 모음, 된소리 'ㄲ', 거센소리 'ㅍ', 'ㅌ(ㄾ)', 'ㅎ'으로 끝나는 용언 어근에 쓰인다. 모음이나 'ㅎ'으로 끝나는 어근 뒤에서는 어근과 합쳐질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르 불규칙 활용이면 어근 '르' 부분의 'ㅡ'가 탈락하여 '리'로 합쳐진다.
예) 쓰다→쓰이다(씌다), 바꾸다→바뀌다, 꺾다→꺾이다, 짚다→짚이다, 놓다→놓이다, 가리다→가리이다, 누르다→눌리다, 부르다→불리다, 쌓다→쌓이다(쌔다), 베다→베이다, 흩다→흩이다 등- -히-: 대응하는 거센소리가 있는 'ㅂ(ㄼ)', 'ㅈ(ㄵ)', 'ㄷ', 'ㄱ(ㄺ)'로 끝나는 용언 어근에 쓰인다.
예) 먹다→먹히다, 묻다→묻히다, 닫다→닫히다, 잊다→잊히다[34], 밟다→밟히다, 얽다→얽히다, 부딪다→부딪히다 등- -리-: 'ㄹ(ㅀ)'로 끝나거나 ㄷ 불규칙 활용을 하는 용언 어근에 쓰인다.
예) 열다→열리다, 꿇다->꿇리다, 듣다(listen, 聽)→들리다, 틀다→틀리다- -기-: 'ㄴ(ㄶ)', 'ㅁ(ㄻ)', 'ㅅ', 'ㅊ'으로 끝나는 용언 어근에 쓰인다. 단, '뜯기다', '믿기다', '찢기다' 같은 예외도 있다.
예) 안다→안기다, 감다→감기다, 빼앗다→빼앗기다, 삶다→삶기다, 쫓다→쫓기다 등
그렇게 규칙은 찾게 되었다. 그런데 다음 찾은 논문 (지금 보니 나무위키에도 적혀있는 내용이다)을 보니, (링크는 나중에 걸어둬야징) 피동접사의 생산성이 사라졌단다. 즉 이때까지 피동접사가 안 붙어본 새로운 단어에 피동접사를 붙여보려 하면 안 붙는다는 거다. 그럼 왜 그 많은 애들이 피동접사를 못 붇였는지 설명이 된다! 더 찾아보니 피동접사의 생산성이 사라졌다, 접사 대신 통사적 방법을 쓴다 ('통사적 방법'이 뭔지 난 모르겠는데 막 기능동사나 보조동사, 이런거 얘기하는 것 같다)라는 소리가 굉장히 많다.
(아직 덜썼지만 일단은 일케 올려본다 ㅋㅋ. 아예 버려질지도 모르니. 근데 처음으로 언어학 관련 탐구같은 탐구를 한 계기다 꼭 진행됐음 좋겠다)
i'm trying to disprove my korean teacher on something she said that sounds the most wrong thing ever, so i'm going to make my own theory about passive voice in korean without any spoilers by people who have already researched this stuff. then i will experiment on my acquaintances to prove that the rules are legit. it's gonna be a mini research project and it's gonna be great.↩
국어시간에 '역순행적 구성'이란 걸 배웠다. 여기선 현재에서 어떤 소리를 해대다가 그 소리를 맥락화하기 위해 과거를 회상하는데 그 과거 회상이 포인트가 되는 구성. 학교에서 배우는 단편소설에서 그런 구성이 흔한 것 같다.↩
라 표현하는 게 맞나?↩
이 부분을 왜 경상도 방언으로 작성했을까? 나도 모른다 걍 그러고 싶었다. '경상도 방언' 하니 생각나는데 나 요즘 ㅓ와 ㅡ가 합쳐지는 것 같다. 의도하지 않았다. 근데 재밌다 더 경상도 방언 느낌이 난다. 근데 저번에 경상도에서 2007년생이랑 하루를 보냈는데 의도적으로 '-나/-노/-가/-고'를 붙이기 전의 나와 비슷하게 성조만 경상도 방언같고 다른 건 표준어 or 최소한 내가 사는 데랑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피동사다! 국립국어원을 트롤하기 위해 일부러 이중피동을 썼다.↩